못다한 이야기

어제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 중 하나에 참가했고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냥 몇 개만 변명삼아 남기면…

사회자 선생님이 내가 이미 예전부터 유명했다고 하셔서 당황했는데… 맞다. 유명하긴 했다. 얼마나 유명했냐고?

2000년대 중반 한 선생님(내가 속한 적 없는 학교 교수)은 나를 보며 “트랜스젠더가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세상 참 좋아졌다.”고 했지. 다른 한 선생님(역시나 내가 속한 적 없는 학교의 교수)은 나를 앞에 두고 “요즘 애들 퀴어 공부해서 참 큰일이다.”라고 했지. 참고로 후자의 교수는 퀴어 관련 많은 학위논문의 지도교수였다. 두 교수 모두 퀴어 연구를 부정하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암튼… 이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유명세는 있었다.

어제 발언을 할 때, 나는 많은 부분을 나의 성격 문제로 설명했는데 그 자리에서 개인의 성격 문제로 설명한 이유를 미처 설명하지 못했다.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제도적 문제를 바꾸는 다양한 작업이 필요하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혐오가 빈번한 상황에서도 구조적으로 사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종류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학교에서 지도교수가 퀴어에 무지하여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학과의 동료나 교수가 퀴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할 때 그 말을 직접 듣는 개인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 혹은 퀴어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반복해서 듣는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염두에 두는 것은 중요하다. 변방연극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는 희망을 피력했고 가능성을 피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와 다치는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유학을 가지 않고 한국에서 퀴어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면, 물론 가능한데 그것은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나처럼 좋은 조건에서 퀴어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일 뿐, 많은 경우는 여전히 부정당하고 어렵고 고군분투를 해야 한다. 동료가 있어서 버틸 수 있고 조직화해서 뭔가를 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에게 남는 상처를 계속 염두에 두는 것이 요즘 내 고민이기도 하고.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어제 자리에서는 그냥 내 성격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우를 저질렀네…

퀴어락, 퇴사 인사

퀴어락의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면 언제나 ‘퀴어락 담당자’로 존재했던, 루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퀴어락 담당자‘였던’ 루인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1월부터 2026년 8월까지, 퀴어락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현재까지 저는 항상 퀴어락과 함께 했고, 그리하여 퀴어락은 제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활동을 하며 여러 단체를 만들었고, 여러 단체와 협업을 했지만, 그럼에도 시작부터 현재까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제 삶의 일부처럼 여기는 곳은 퀴어락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17년의 시간을 함께 해서가 아니라 이런 소중한 곳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퀴어락을 만들기 전, 저는 한국에 퀴어 관련 자료를 모두 모아두고 과거 자료를 수집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바람이 인연을 만들었는지 퀴어락 설립위원에서 운영위원, 그리고 상근활동가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퀴어락은 많은 다른 아카이브 단체와 기록관리 전공자들의 관심을 받았고, 합정지구, 대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전시회, 광주비엔날레와 베를린비엔날레와 같은 큰 행사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이후 설립된 퀴어 관련 여러 아카이브의 활동에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퀴어 의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퀴어락은 매우 소중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퀴어락은 대안적 아카이브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고 덕분에 상근활동가인 저는 그런 성과와 고민을 강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록관리학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퀴어 아카이브 설립 및 운영과 관련하여 어떤 종류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노력이기보다 온전히 퀴어락이 갖는 힘과 가치 때문입니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부설기관이라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퀴어) 아카이브는 구조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고 그렇기에 안정적인 후원이나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운영이 어렵습니다. 아카이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1명의 고정 상근활동가가 필요하고, 실물 기반 아카이브라면 이를 전시하고 보관하고 보존할 공간이 필요하며, 홈페이지 등 여러 운영 비용, 관리 비용, 수집 비용 등… 하나의 아카이브를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고, 아카이브는 자체적으로 이를 충당할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실제 퀴어락 설립 당시 아름다운재단의 3년 지원 사업이 종료되고 독자 운영을 시작했을 때, 퀴어락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이도 2014년 비온뒤무지개재단이 설립되면서 퀴어락은 재단의 부설기관으로 위상을 변경했고, 그때부터 비로소 안정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퀴어락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감당했고, 그동안 수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매번 퀴어락이 가장 좋은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또한 재단은 재단 자체의 운영과 퀴어락 운영 등 사업에 필요한 후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고 많은 분들이 후원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많은 노력은 들이는데 비례하는 성과로 돌아오지 않고, 재단의 누적된 적자는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퀴어락의 17년 역사 중 12년은 재단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기에, 저는 잠시 그 부담을 덜어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네, 제가 퀴어락을 퇴사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퀴어락 자체의 종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잠시 퀴어락 운영을 중단해야만 재단도 퀴어락도 미래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퇴사와 함께 한국 퀴어 운동의 소중한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퀴어락도 운영을 중단합니다. 다시 상근활동가가 일을 할 수 있기 전까지 퀴어락의 주요 업무 중 방문, 열람 등 대부분의 업무가 중단됩니다. 기존의 등록 자료 및 등록 대기 자료의 보존 및 유지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무국에서 대리하니 자료 걱정은 마시고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부설기관인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은 단지 상근활동가가 없어진 것이지 기관 자체가 해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언젠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재정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그때는 제가 되었든, 저보다 더 좋은 다른 누군가가 되었든, 다시 상근활동가가 일하는 퀴어락이 되기를 바랍니다. 1인 운영이 아니라 더 많은 상근활동가가 일하는 미래도 상상해봅니다. 17년의 역사 동안 일곱 번의 주소지 변동을 겪은 퀴어락이 영원히 이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더 먼 미래의 일이겠지요. 그동안 비온뒤무지개재단과 퀴어락에 후원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자료를 기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 안녕
잠시, 퀴어락을 봉인하겠습니다.

채식을 안 할 듯 -> 안 함

어제는 어느 학술대회의 뒷풀이를 갔다. 근 몇 년 만에 가는 뒷풀이였는데 자리 자체는 배울 게 많아서 재미있었다. 오랜 만에 갔는데 가길 잘했다 싶은 그런 자리였다. 근데 이 글에서 할 이야기는 좀 다른 것인데 음식을 먹고 난 이후로 혀가 굳기 시작했다. 부어오르고 굳어가며 통증이 생겼는데 이게 아무래도 알러지 증상이었다. 먹은 게 두부, 가지, 숙주, 생강. 통상의 알러지 성분 중에서 감안하면 가지 아니면 생강인데, 와사비에 알러지가 있고 와사비로 인해 응급실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다보니 비슷한? 느낌의 생강으로 의심하고 있다(전혀 다른 과의 식물입니다). …설마 두부는 아니겠지?

알러지는 내게 낯선 증상이 아니고 이 블로그에도 알러지 관련 글이 수십 개는 있을 것이다. 다만 작년부터 올해까지 알러지 반응 성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털 있는 모든 종류의 과일(복숭아 계열 모든 거, 무화과, 키위 등등), 사과, 그리고 토마토, 생강 아니면 가지… 최근에는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입술이 붓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모든 견과류가 포함되는지는 모르겠고, 견과류가 입술에 접촉했을 때 증상이 발생하는 듯하여 좀 더 테스트가 필요하다. 토마토는 좀 타격이 큰데 채식에서 토마토는 가장 중요한 채소이기도 하고, 비건식당이 아니지만 비건이나 채식을 지원한다고 할 때 나오는 음식 중 토마토가 안 들어가는 경우가 없다시피하다. 근데 토마토가 0.01%가 들어간 과자를 먹어도 알러지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당연한가? ㅋㅋㅋ) 두드러기 형태의 증상이 아니라 식도가 부어오르는 형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알러지 증상 중 위험한 증상이다. 그리고 어제는 아마도 생강일텐데(가지면 가지튀김도 못 먹어서 치명적인데?) 생강은 혀가 굳는 감각에 통증도 있어서 마찬가지로 좀 위험한 증상이다. 그 사이 항히스타민제를 여러 개 먹었는데 아직도 증상이 좀 남아 있다.

그래서 근래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내게 채식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채식의 정치적 의미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랜 식습관으로서의 채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과일 야채에서 계속 알러지 증상이 발생하고 있다면 알러지가 생기는 음식과 생기지 않는 음식으로 식습관의 세계관(?)을 바꾸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아마 이제 채식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거 같다. 물론 토마토의 타격 이후로 사람 많은 자리 같은 곳에서는 좀 느슨하게 먹고 있기는 했다.

아, 근데 진짜 알러지로 논문 하나 쓰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면 10년 뒤에 완성하겠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