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책, 트랜스젠더 책, 글쓰기 연습

퀴어 이슈나 트랜스젠더 이슈에 관심이 없을 법한 사람이 내가 만약 고양이 관련 책을 쓴다면 살 의향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한 명은 아니고 몇 명인가 그랬다. 그렇다고 또 많은 수는 아니고. 아무려나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재밌다고 느꼈지만 당연하겠다 싶기도 했다. 고양이 책 독자와 트랜스젠더 책 독자는 다르다. 매우 다르다. 그리고 고양이 책 독자가 훨씬 폭넓지만 또 상당히 까다롭고 까탈스럽다. 그러니 고양이 책을 쓴다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쓴다면, 사실 대충 각은 나온다. 물론 그게 무척 진부한 형태라서 그 각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재밌게 쓰려면 근본적으로 흔들어야 하지만 대충 흐름과 꼴은 잡힌다. 그리고 어차피 안 팔릴 책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 마구마구 쏟아내면서 쓰겠지.
고양이 이슈로 글을 쓴다면, 각이 안 나온다. 고양이 안내서만 수십 권이고 고양이 관련해선 유명한 저자도 여럿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라면 그동안 떠든 역사가 있으니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고양이 이슈론 흔한 블로깅 뿐이니 내가 책을 쓴다면 뭔가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고양이 책을 쓴 많은 저자는 이미 유명 블로거였다. 블로그에 고양이 관련 글을 올렸고 그것이 인기를 끌었고 책을 냈고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흔해 빠진 집사. 그저 흔한 집사. 더군다나 내가 고양이와 관련해서 특별히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는가.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데.
그러니 고양이 이슈로 글을 쓴다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는 것보다 백배는 더 공이 드는 작업이고 어려운 작업이다. 사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겠다면 기존의 참고문헌부터 새로운 참고문헌까지 많은 것을 읽어야 하니 상당한 시간이 든다. 그런데 고양이 책을  쓴다면 상상만으로도 막막하다. 아마 더 많은 공이 들겠지. 막연히 이 상상 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문장 연습과 글쓰기 훈련이다. …!!! ㅠㅠㅠ
진심으로 하는 얘긴데, ㅎㄱㄹ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열리는 글쓰기 강좌에 수강해서 글쓰기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 내년 즈음 어차피 날 아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루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름으로, 그리하여 다른 자아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고 훈련하고 싶다. 일단 글쓰기 연습이 먼저구나. 으흑…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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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글쓰기 관련 책을 쓰더라고요.. ;;;;;;;;;;;;;;;;;;;
죄송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

퇴고의 즐거움 + 책이 나오긴 할 텐데…

15일까지 급하게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다. 사실 급하게 마감하면 안 되는데 멘붕 같은 일이 생겨 그렇게 되었다. ㅡ_ㅡ;;; 암튼 8월 초부터 글쓰고 퇴고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데…(라는 건 거짓말. 그 사이에 책장 정리도 조금 했고 부산에도 2박3일 갔다 왔다, 내일은 세미나도 있다;; )

원고지 150매 이내로 써야 하는 글인데 열흘 정도 시간 동안 ‘제대로’ 완성할 수는 없는 법. 그럼에도 완성해야 하는 상황. 다행이라면 그 전에 원고지 60매 분량의 초고가 있었다. 초고 내용을 확장하고 빠졌던 부분을 보충하는 식으로 얼추 이틀 만에 150매 분량을 만든 다음 계속해서 수정하고 있다. 아울러 다음주에 친구가 원고를 한 번 검토해주기로 해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기도 한데…
퇴고하면서 좀 웃긴 것이… 초벌 원고에서 ㄱ문장과 ㄴ문장 사이에 좀 더 조밀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서너 문장을 추가한 곳이 여럿있다. 그런데 추가한 문장을 ㄱ, ㄴ문장과 조금 더 잘 어울리고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수정하다보니 결국 ㄱ문장과 ㄴ문장만 남았다. ㅡ_ㅡ;;; 추가한 문장을 모두 덜어냈다는 얘기. 혹은 ㄱ문장+추가한 서너 문장+ㄴ문장을 버무려서 두어 문장을 전면 수정하거나. 크크크.
아울러 초고에 추가하며 멋들어진 문장을 몇 개 썼는데 그 중 상당수를 지웠다. 내용과 안 맞거나 했던 얘기 또 하는 느낌이거나 굳이 없어도 무방하거나. 솔직히 아쉬워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지만(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퇴고하며 살린 것도 있지만) 이런 욕심이 가독성을 떨어뜨리거나 난잡한 느낌을 줄까봐 염려되어 뺐다. 지금 내 수준에 문장 멋 낼 상황은 아니잖아. 내용 전달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이지.
지금 글이 출판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내용과 관련해서 밝힐 수 있는 게 없네… 출판되길 바라고 있지만 어떻게 될까나…
글의 완성도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자부하는 것은 있다. 이 글이 출판된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작품 분석을 시도한 첫 번째 글이지 싶다. 작품 속 트랜스젠더 인물을 분석한 논문은 더러 있지만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작품을 분석한 글은 못 읽은 듯하다. 물론 나의 공부가 짧아 모든 논문을 다 검토한 것은 아니니 이렇게 단언할 순 없지만(혹시나 있으면 제보 부탁해요!).
아무려나 글을 쓰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자학하는 과정,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조차도 즐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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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부터 겨울, 알라딘-자음과모음 인문웹진에 다른 분들과 함께 글을 연재했지요. 기억하시나요? 전 화학적 거세를 괴물과 엮어서 썼고요. 그 글이 드디어 책으로 나올 듯합니다. <성의 정치, 성의 권리>란 제목이고요. 그 사이 내용을 좀 수정해서 웹진 연재 판본과 단행본 판본은 좀 달라요. 전면 뜯어고친 부분도 있고요. 흐흐흐. 한 동안 출판사에서 방치했는데 ;ㅅ; 출판사 교정 작업에 들어갔고 저자소개도 넘겼으니 오는 가을엔 정말 나오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책이 나와봐야 바뀌는 것은 저자의 이력서 한 줄 뿐. 출판과 관련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기분이 복잡해요. 출판한다는 것은 어떤 실천일까요? 정말 출판 작업은 운동일까요? 어떤 출판이 운동일까요? 정의와 관련한 책을 내고 많은 사람이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고 또 고민을 좀 바꾼다고 해서 꼭 운동은 아니니까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이웃 D에게 고마움을 전해요. 🙂

책으로 도피하기

언젠가 한 선생님은 책과 논문을 읽는다는 건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이라고 했다. 혹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읽는다고 했다. 그땐 그때 나름의 방식으로 어림짐작했지만 또렷한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온 몸으로 절감한다. 몸의 괴로움, 관계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책과 논문으로 도망치는 나를 발견한다. 몸이 괴로워서, 고민이 자꾸만 몸을 흔들고 또 불안하게 만들어서 책으로, 논문으로 도망치고 더 열중해서 읽으려 애쓴다.
몸이 괴로우면 자는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그 상실감 혹은 공백을 감당할 수 없어 잠으로 도망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뒀다. 대신 책으로, 논문으로, 혹은 일거리로 도망쳤다. 어쩌면 내가 읽은 텍스트의 팔 할은 내 심란한 고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회피하려는 힘으로 공부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란하거나 조금 괴로운 고민에 몸이 짜부라질 것 같아 조금은 억지로 책에 집증하려 한다. 텍스트에 빠져드는 순간만은 그 고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고민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무더운 여름이다. 정말 무더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