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기록물 수집하기 01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기 싫어요…
KSCRC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료수집을 하기로 했다. 기록물의 종류가 다양하니 몇 사람이서 종류를 나눴고 난 단행본과 논문 중 일부를 담당했다. 단행본은 ㄱ. 단행본 자체로 의미 있는 경우, ㄴ. 단행본의 일부만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루지만 단행본 형태로 의미 있는 경우, ㄷ. 단행본의 일부며 굳이 수집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중 ㄱ과 ㄴ만 수집할 예정이다.
단행본과 논문을 한 번에 다 정리할 수는 없으니 부담없을 듯한 단행본부터 시작했다. 수집 작업을 시작하기 전 회의자리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문헌은 한 2~30권 정도겠거니 했다(오해하는 분이 있는 듯한데 한국어만 모읍니다, 물론 영문판을 기증해주시면 기꺼이 받지만.. 흐흐).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니까.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퀴어락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 중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 있을 법한 기록물만 대충 정리했는데 서른 종을 가볍게 넘었다. 응? 어리석은 나는 트랜스젠더 관련 도서가 적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은지는 가늠을 못 하고 있었다. 이후 며칠 동안 대충 정리한 1차 목록에만 80여 권이었다. 헉… 80여 권이 많다곤 할 수 없지만 적은 것도 아니라 좀 놀랐다. 이렇게 모아서 정리하면 늘 의외로 많구나라고 느낀다.
근데 80여 권으로 끝난 게 아니다. 실물을 확인한 다음 수집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기록물 100여 권의 목록이 따로 있고, 검토도 못 한 기록물이 200여 권이다. 아, 정말 시작이 미약했다면 그 끝도 미약하고 싶은데.. 언제 다 검토하지? ㅠㅠㅠ 실물을 확인했기에 확실한 1차 정리 기록물 80여 권을 제외하면 모두 방학 때나 검토할 수 있는데.. ㅠㅠ
그나저나 태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이슈에 한 마디씩 하는구나. 굳이 안 해도 괜찮은데요.. 그냥 신기한 트랜스젠더가 있더라는 얘기를 하실 거면 참아주세요.. 크롤러 입장에선 모두 다 수집해야 한다고요.. ㅠㅠ 아키비스트 입장에선 일일이 다 검토하고 수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요.. ㅠㅠ
목록으로 만든 기록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복사하는 과정을 예상하니 꼬박 사흘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서 떠올린 망상이 있으니, 공돈으로 딱 천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 기록물 원 없이 구입하게. 도서관에 가서 복사하지 않고 그냥 단행본으로 다 구매하게. 천만 원어치 구매하고 나면 추가로 구매할 기록물이 이천만 원어치 생길 거라는 건 함정. 크.

잡담 이것저것: 비염, 아키비스트, 계급

ㄱ.
비염이 한 번 터지고 나면 온 몸이 쑤시다. 죽염으로 코세척을 시작한 이후 콧물이 흐른다거나 코막힘 같은 것은 전에 비해 약하지만 온 몸이 힘든 것은 여전하다. 전엔 코에만 모든 것이 몰렸다면 지금은 비염을 견디기 위해 온 몸이 초긴장 상태다 보니 더 쉽게 지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 이틀은 그냥 드러누워 쉬어야 할 듯한데 그러지도 못 하니 아쉬울 뿐이다.
지난 일요일 비염이 터졌고 아직도 온 몸이 뻐근하다.
ㄴ.
문헌정보학과 출신도 아니고 관련 자격증 같은 것도 없지만 아키비스트로 나 자신을 설명하거나 정체화하는 걸 깨달을 때면, 재밌다. 이게 다 퀴어락 활동의 여파다. 아울러 내가 정말 재밌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기도 하다. 운동과 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방법 중, 아키비스트가 확실히 좋다. 사실, 퀴어락 활동을 하기 전엔 그냥 나 자신의 판단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던 일이, 지금은 아키비스트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난 늘, 어딜 가나 퀴어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것이 지금은 퀴어락 활동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엮이고 있다.
농담처럼 진지하게 말하길, 박사학위 취득하면 퀴어락에 취직할 거다. 지금은 운영위원이고 그때는… 음… 그럼 월급은?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흐.
ㄷ.
박사학위 논문을 쓴 후 취직이 안 될 거라고 미리 단언하는 것은 전공 때문일까, 계급 경험 때문일까? 내가 무슨 논문을 쓰건 그것은 결국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룰 것이다. 피상적으로 전혀 다른 이슈를 논한다고 해도 그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취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기억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들은 최고의 직장은 공무원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안정적 직장이란 점에서였다. 많은 돈은 못 벌어도 안정적이라는 것. 부모님의 빈곤 경험은 안정성을 지향했고, 그 안정성에 걸맞는 행동양식을 지향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은 공무원이었지 교수나 어떤 연구직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이 싫었다. 직종으로서 공무원이 내 몸에 적합하다고 믿은 적,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나니 내 상상력에 남는 일은…
특별히 많은 돈을 벌 욕심은 없다. 그냥 읽고 싶은 책 살 수 있고, 굶지 않으면서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알바로 생계를 연명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물론 여기엔 다른 이유도 있다. 생계를 이유로 내가 주장하고 싶은 언어를 망설이게 될까봐 두려워서다. 한줌도 안 되는 어떤 안정감을 지키려고 내가 말해야 할 언어를 말하지 못 하게 될까봐 두려워서다. 애당초 기존 학제에 편입될 가능성도 없지만, 이런 두려움이 있다면 그냥 외부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의 이런 고민은 분명 내가 살아온 가족의 계급 경험인데, 나는 왜 늘 이것이 단지 전공 문제일 뿐이라고 상상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