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식의 삶을 일방적으로 이끌거나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섭해서 자식이 잘 된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나는 부모가 자식의 삶에 개입할 수록 자식의 삶은 더 나빠진다고 믿는다. 이것이 부모의 입장이 된 적 한 번도 없는 내가 하는 말이니 매우 편협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를 테면 mtf/트랜스여성인 딸을 군대에 보내겠다고, 군대에 보내 정신 차리게 하겠다고 대응하는 부모(많은 경우 아버지)의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 뿐이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슈를 회피하고 직면해야 하는 이슈에서 도피하는 태도일 뿐이다. 문제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점)에서 도피하겠다면 그냥 그 자식을 만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자식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버리는데 있다.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키우는 짓이다. 이건 그냥 화풀이일 뿐이다. 매우 옹졸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이 화풀이가 어떤 미래를 야기할 수 있는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고민은 했을지, 정말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친구 사이처럼 어느 정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길 바란다. 꼴보기 싫으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인 수준의 관계이길 바란다. 자식 위한다는 명목으로, 집요하게 자식의 삶에 훈수두고 자신의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애정이라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위대한 헌신’이라고 믿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여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째서 자식을 끝까지 소유물로 인식하는 걸까? 이 무시무시한 인식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가족이 가장 무서운 관계다. 가족이 가장 위험한 관계다. 나는 원가족 공동체가 각 구성원을 숨막히게 하는 관계이기에 각 구성원은 만나지 않을 수록 좋다고 믿는다. 이것이 단지 나의 경험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믿는다.
왜,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이것만 인정해도 관계는 훨씬 수월할 텐데.

커밍아웃, 부모에게

어제 쓴 글에 이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나만 결정할 수 있다. 애당초 커밍아웃은 내가 결정할 문제지 다른 누군가가 하라, 하지 마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이것이 매우 순진한 언설 같아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행위는 특정 범주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차별이나 편견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덮어씌움과 같다. 트랜스젠더에게 커밍아웃을 요구하며 네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니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 아니냐라는 말은 결국 모든 책임은 트랜스젠더에게 있다고 말함과 같다. 트랜스젠더라고 주변에서 욕하는 것도, 여성답지 못하다 혹은 남성답지 못하다고 아무나 함부로 지껄일 수 있는 것도, 법적 제도가 없는 것도,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잘 모르는 것도, 다른 모든 것도 트랜스젠더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함과 같다.
누군가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차별하는 건 트랜스젠더 때문이야”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한 사람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가 변하기 위해선 네가 커밍아웃을 해야 해”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쉽게 수긍한다. 슬픈 일이다. 앞의 말과 뒤의 말 사이에 인식론적 차이는 거의 없다. 커밍아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커밍아웃이 모든 일을 해결할 궁극의 해법이 아니란 얘기다. 커밍아웃은 그저 시작일 뿐이며 그것도 시작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기획에 많은 힘을 쏟는다면, 비록 유명인사의 커밍아웃이 긍정적 효과를 지닌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주체만 힘들 뿐이다.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오랜 시간 골몰했다. 여전히 이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못 찾고 있다. 무슨 뜻이냐면, 나는 ‘활동가라면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웃기다고 믿는다.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일이 가장 의미있는 커밍아웃이라고 의미 부여 하는 행위에도 얼마간 불편함을 느낀다(가장 쉽지 않은 일이란 점엔 동의한다). 활동가라면 부모에게 당연히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거나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진정한 커밍아웃이란 언설은 한국의 규범적 가족제도를 강고하게 내면화하고 있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말하는 가족 가치를 비이성애-트랜스젠더 실천에도 고스란히 이식하겠다는 기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런 식의 언설을 들을 때면 속으로 혈연가족제도가 그렇게 좋으냐고, 소중하냐고 되묻곤 한다. 소심하여 속으로만 구시렁거리지만…
다른 한편, 부모는 나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야 하는 존재인가? 부모는 나와 친밀한 존재인가? 나의 경우엔 이 질문에 부정적이다. 나는 부모 누구에게도 내가 사는 방식을 얘기하지 않는데 이것은 내가 부모와 어떤 특별한 친밀감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 어느 시점부터 매일 아침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있지만 나와 어머니의 친밀감은 딱 여기까지다. 나는 그 이상을 어머니와 혹은 부모와 나눌 의지가 없다.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가 아닌데 굳이 왜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지? 내가 부모에게 혹은 원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건, 그들과 친밀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친밀하지 않음에도 원가족은 내게 많은 것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 피곤함, 고단함 때문에 원가족에게만은 커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농반진반으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건 농반진반이고.)
커밍아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커밍아웃 하나로 뭔가 엄청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관련 이슈에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어떤 이슈에 큰 기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커밍아웃 했다는 것만으로, 소위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했다는 것만으로, 부모나 원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는 것만으로 기고만장하다면 그건 가장 부정적 용법으로서 커밍아웃 페티시일 뿐이다(다양한 페티시가 있는 1인으로서 이런 표현이 상당히 불편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