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삭이는 시간을 두기

어떤 이슈에 긴급하게 개입하는 건 늘 중요하지만, 어떤 이슈에 논평하는 일은 늘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물론 입이 무척 싼 나는 이런 걸 잘 못 지키지만 그럼에도 종종 이런 고민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엔 많은 사람이 긴급하게 개입해야겠지. 그것이 매우 긴박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하지만 만약 어떤 상황이 어느 정도 종료되었다면 그에 관한 논평이나 평가는 시간을 두고 좀 천천히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왜냐면 그래야만 그 행사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좀 더 꼼꼼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마구마구 아무 논평이나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험한 일이다. 때론 우호적인 척, 같은 편이라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는 척 취하는 논평이 ‘적대’적 관계의 행동보다 더 잔인하고 위험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논평이 무엇 그리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고 서둘러 말하는 것일까? 조금만 시간 여유를 두고 말하면, 속으로 조금만 더 삭이면서 말하면 훨씬 좋을 텐데. 물론 이런 고민은 나의 느슨하고 나태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컨트롤 비트를 다운받고 있습니다.
뭐, 이런 구닥다리 농담을 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참여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사 중 가장 감동적이고 좋았던 이번 퍼레이드와 관련한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서두를 수 없는 다른 상황도 있고. 하지만 관련 글을 꼭 쓰고 싶다. 이번 행사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더 정확하게는 이번 퍼레이드에서 내가 느낀 중요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내 의견 따위 서두를 필요 없는 그런 의견이다. 그냥 시간을 좀 더 두고 속으로 삭이면서 천천히 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쓰고는 싶다.
(사실 지난 일요일 관련 감흥을 푸느라 정작 써야 할 글을 제대로 못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뜬 상태로 쓴 글은 반드시 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컨트롤 비트를 다운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스전의 핵심은 상대방을 뭉개는 게 아니다. 라임이다. 라임 없는 디스는 상대방을 까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까는 것이다. 논평이나 비판도 이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논평과 비판의 핵심은 존중이고 애정이다. 그냥 ‘널 깔보겠어’, 혹은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하고 싶어’, 이런 마음이라면 논평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은 빈약한 나의 믿음일 뿐이지만.
근데 여기서 가장 큰 함정은 … 속으로 삭이는 시간을 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란 것. ㅠㅠㅠ

하고 싶은 말 하고 살기

종종 정희진 선생님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 서론에 나온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누군가가 정희진 선생님께, 너는 할 말을 다 하고 살지 않느냐고 했다는 에피소드. 이 사회의 비규범적 존재의 발화는, 두어 마디여도 규범적 사회는 시끄럽다고 느낀다. 참, 말 많다고, 할 말 다 하고 산다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는 꽤나 많은 말을 떠드는 편이다. 정말 수다스러울 정도로, 때때로 트윗 하나 분량이면 충분할 얘기를 블로그 포스팅 하나 분량으로 쓰니까. 어떤 날은 할 말이 없는데 블로깅은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 참 많은 말을 한다 싶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열 개 중 하나, 아니 백 개 중 하나도 못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많은 얘기가, 내 안에 작동하는 많은 검열로 인해 그냥 묻힌다. 혹은 내가 너무 많이 떠들어서 남들이 얘기할 기회를 앗는 것은 아닐까라는 어쭙잖은 염려로 말을 삼가기도 한다.
이렇게 말을 망설이는 무수한 상황에서도, 어떤 경우엔 늘 그때그때 말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주로 개별 관계 맥락에서 더 자주 작동한다. 특히 안 좋은 얘기보다 좋은 얘기일 땐 더 그렇다.
이를테면… 나는 나와 처음으로 산 고양이, 리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안타까워 한다. 정말 좋아했는데, 그래서 만날 “아웅, 예쁘다.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라는 말은 했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못 했다. 정말 사랑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못 했다. 무엇이 부끄럽다고.. 그냥 말 하면 되는 것을… 리카는 갑자기 아팠고, 나는 안타까워만 했다. 그 순간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 그 순간에도..
혹은, 이곳에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는 간단한 생일 축하 인사였다. 그냥 어색한 말투로 생신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원래 그날은 부산에 가서 같이 밥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바쁘다는 이유로 부산에 가지 않았다. 그냥 전화만 했다. 명절에 볼 텐데라며 말을 아꼈다. 그냥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얼추 열흘 뒤,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말을 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찰나. 어떤 감정의 관계였건 상관없이 뭔가 나눌 얘기가 있었을 텐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지는 않는다. 다 하고 살 수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관계에선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물론 잘 못 한다. 아직도 많은 관계에서 좋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 못 한다. 그냥 간단하게만 말할 때도 많다. 그러지 말하야 하는데.. 적어도 블로그에 떠드는 만큼이라도 직접 전할 수 있어야 할텐데…

여러 개의 문이 한 번에 열리는 시간: 나방, 고종석, 교장, 글쓰는 공간, 시간

01
어느 선생님께서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대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죠. 술자리를 비롯하여 일상에서 성폭력을 빈번하게 행하면서도 진보연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 행동하는대로 혹은 몸 가는대로 생각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생각대로 행동하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몸 가는대로 생각하고, 그렇게 마음을 놓아보내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몸 가는대로 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또 알고 있죠. 결국 몸 가는대로 간다는 걸. 결국 삶이란 불을 너무 사랑하여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 같은 것일까요? 제 몸이 까맣게 타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날아드는 그런 ….

02
고종석 씨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문장에 반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엔 불편한 구절이 적잖아요. 뭐, 어차피 문장을 읽으려고 책을 샀지, 내용을 읽으려고 산 건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잠들기 위해 누워선 몇 쪽을 읽는데 문장이 너무 좋아 잠드는 게 아쉬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하루에 세 꼭지 정도만 읽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의 문장을 읽고 나면 저의 문장이 너무 비루하여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는 거죠. ;ㅅ;

03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내세워 이슈가 되었죠. 교장은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려고 했다나 어쨌다나. 요즘 전 그 교장이 특이할 것 없는, 매우 흔한 모습이라고 중얼거립니다. 학생 성적이 학교 평균에 안 좋은 영향을 주니 전학 가라는 교장, 두발이 교칙에 맞지 않다고 학생에게 욕을 하는 교장, 학교 발전 기금이란 명목의 돈을 안 냈다고 학생을 괴롭히는 교장  …. 따지고 보면 제가 경험한 교장들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내세운 교장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교장이 그렇진 않습니다. 일제교사 대신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을 허가해줬다고 처벌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체험학습을 허가하겠다는 교장도 있으니까요. 교장은 모두 나쁘다는 식의 일반론을 펼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언론을 타는 부정적인 교장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거겠죠. 제 글에서 결론이 생뚱맞은 것 역시 특이할 것 없다는 거 아시죠? ;;;

04
가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상하죠? 여타의 인쇄매체나 출판물보다 이곳, [Run To 루인]이란 블로그가 제게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당연한 말이긴 하죠. 제가 직접 꾸려가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하기 힘든 말, 상당히 조심하는 말을 다른 매체에 기고하는 글에선 거리낌 없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매체 대부분은 이곳을 찾는 분의 수보다 더 많은 이들이 구독하는 매체인데도 그렇습니다. 이곳이 제겐 애증인 공간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까요? 아, 애증의 공간은 맞아요. 하지만 이곳에선 종종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글을 쓰는 공간이 이곳만이 아니란 점이죠. 네, 제가 글을 쓸 곳이 이곳 뿐이었다면 제 삶의 일부는 흔적을 남기지 못 하고, 제 몸 깊은 곳에 침잠하고 용해하여 형태를 못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특정 시간에 기록해야만 의미가 있는 형태를 못 가져 예기치 않은 순간에 엉뚱한 모습으로 튀어나왔겠죠. 다행입니다. 이곳이 제가 흔적을 남길 유일한 공간이 아니어서.

아무려나 제 몸은, 제 몸의 일부는 여러 공간으로 흩어지고 하나로 통합할 수 없는 상태로 부유합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몸엔 꿰맨 자리와 땜질한 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쳐 꿰매지 못 한, 땜질하지 못 한 제 흔적들이, 제 몸의 일부들이 언제나 제 방에 둥실둥실, 저 허공 어딘가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풍경. 아름다운 풍경.

05
하나의 일이 끝나고 있는 시간입니다. 전 결국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팔자도, 쉴 수 있는 팔자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복이 많다는 걸,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애쓰면 결국 저와 같은 혹은 비슷한 일을 하고 싶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