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어제 밤엔 상한 음식에 피는 하얀 곰팡이처럼 곱상하고 예쁜 눈이 내렸다. 소복하게 길에 쌓였고 그 길을 걸으니 즐거웠다. 눈이 내리는 밤, 통유리로 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라본다면 더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장하며 어떤 일을 집중해서 하다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 기절하거나 쓰러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주 내내 긴장과 피곤의 연속이었다. 어머니 수술과 알바를 새로 시작하는 일로 잠시도 긴장을 놓지 못 했다. 피곤했음에도 느긋하게 푹 잘 수도 없었다. 어제 하루는 좀 여유있는 일정이었고 그래서 금요일 밤에 일찍 자서 토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그럼에도 어지러웠고 눈 앞이 어둑하니 사물이 잘 안 보였다. 이대로 쓰러지는 것일까 싶은 수준. 그래서 낮에 눈을 붙였고 몇 시간을 더 잤다. 그러고 나서야 몸이 좀 괜찮았다. 피로와 긴장이 몸에 가득 쌓여있었구나…
여기서 덧붙일 내용은 긴장감 자체는 좋지만 이번 긴장감은 복잡한 심경의 긴장감이었다.
어머니는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어제 통화를 했는데, 물론 아직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통화를 도왔다. 그런 와중에 내게 한 말, 빨리 결혼해라. 아, 온갖 복잡한 기분이 드는 말이었다. 회복이 진행될 수록 결혼하라는 말을 더 자주하겠지. 아, 싫다.

촉박한 일정이 주는 긴장

이번 달 20일 즈음 마감하기로 한 원고 일정이 바뀌었다. 부득이한 상황으로, 그 원고를 이번 주 목요일에 마감하기로 했다. 내게 의사를 묻는 메일에 잠시 고민은 했다. 길지 않은 글이라도 5~7일 정도 여유를 두고 글을 쓰는 편이라 내일부터 쓴다고 해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감 원고가 하나가 아니다. 금요일 학과 콜로키움에 발표할 원고는 수요일 마감이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두 편의 원고(그 중 하나는 분량이 꽤나 많다)를 마감해야 한다. 기존 원고 일정 만으로도 뭔가를 추가할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원고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겠느냐는 정중한 메일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답장은 약간 길게 적었지만 속으론 ‘그냥 쓰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일정이 촉박하니 갑자기 긴장감이 살아나고 몸이 살아난다. 이런 긴장감이 좋다. 마감이 분명하게 있어서 촉박한 느낌이 들 때의 긴장감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 중 하나다. 아울러 이런 긴장감은 그동안 여유롭던 내 몸을 깨운다. 마감이 있어야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마감이 있어야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감이 있고 일정이 촉박하면 또 그 상황에 맞게 몸이 움직인다. 이렇게 움직이는 몸이 좋다. 이 긴장감이 어떤 생기를 줘서 좋다.
이제 마감을 향해 열심히 달리자. 신난다. 방학하고 한동안 느슨하게 움직였는데 다시 신난다.

채식의 오랜 습관: 언어바꾸기

“** 좋아하세요?”
“** 좋아하세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제대로 말해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항상 중요한 순간에 말이 꼬여 엉뚱한 말을 한다는 걸 알기에 몇 십 번을 연습했다.
“** 좋아하세요?”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말을 가려야 했다. 그러니 긴장에 또 긴장!
그 말을 해야 하는 순간까지 긴장하며 입에서 중얼중얼. ‘** 좋아하세요?’ 그리고 이제 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상황은 대체로 무난하게 넘어갔다. 별 일 없었고.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현 듯 깨달았다. “** 좋아하세요?”라고 물어야 하는데 “** 드세요?”라고 물었다는 것을. 아하하.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저 나의 채식 경험이 나의 말버릇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어 좀 웃겼다. 어떤 사람들에겐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먹는 것이 동일한 경험이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일례로 내 음식의 향수는 라면이지만, 난 라면을 먹지 않는다. 농담처럼 내가 채식을 관둔다면 라면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라면 특유의 인스턴트와 조미료 맛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좋아한들 무슨 소용이랴. 나는 라면을 먹지 않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없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소용없다. 좋아하는지 보다 먹는지가 내게 더 중요한 이슈다. 십 몇 년을 이 이슈에 부딪히며 살다보니 이젠 몸에 익었다. 그래서 긴장하는 순간, 말을 하기 전까지 연습한 말이 아니라 몸에 익은 말이 튀어나온다. 긴장하면 그냥 알아서 몸에 익은 말이 나온다. 채식은 나의 언어 습관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