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잡담 이것저것

글을 쓰고는 있는데 내가 이 글을 도대체 왜 쓰고 있는 걸까, 궁금할 때가 있다. 정말이지 꾸역꾸역 내용과 흐름은 어떻게든 맞추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고 이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글을 쓰는 내가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글을 중단하고 투고를 포기해야 할까 어떤 글이건 간에 일단 투고는 하고 봐야 할까. 잘 모르겠다. 투고를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투고를 하기엔 정말 부끄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르겠다. 부끄러운 글을 썼으니 이 글은 내 역사에서 조용히 지워버릴까? 투고는 했으니 출판은 되겠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최소화해서 어떻게든 지우는 기획… 이번에 쓴 글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속상하다.
그러고 보면 트랜스젠더를 매우 쉽게 설명한 글을 공개하기로 했었다. 아직 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언제 공개할지는 고민이다. 트랜스젠더와 연애 관련 글을 추가해서 공개할지 그냥 먼저 공개하고 나중에 그 글을 출판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추가할지. 어느 쪽이 좋을까? 결론은 정해져 있다. 선 공개 후 수정. 모든 글은 이것이 진리다. 일단 공개를 질러야 나중에 수정할 기회라도 생긴다. 혹여 수정할 기회가 없더라도 뭐라도 공유하면 그것만으로 좋은 것이니까. 그러니 공유하기 전에 한 번 살펴는 봐야 할텐데 시간 여유가 영 마땅찮다. 밀린 원고를 쓰고 있다 보니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네. 이게 뭐람, 책을 읽고 싶은데 글을 써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다. 이게 뭐람.
한 3년 정도 한두 명 정도와만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잠적하고 싶다. 그곳에서 돈 버는 일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부담도 갖지 않고 오직 책만 읽으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이도 말고 딱 3년 정도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수업만 끝나면 어떻게든 이런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도 같다. 알바는 해야 하겠지만. 그냥 책만 읽으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글, 글

원고 청탁을 받건 받지 않건 이런저런 글을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종종 쓴 글을 출판한다. 몇 년간 출판 경험을 했으니 글이 공개되는 일에 무덤덤 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도 글이 출판되면 두렵고 떨린다. 내가 글에서 논한 사람이, 나 나름으론 긍정적으로 해석했음에도, 내 글을 읽고 행여나 불쾌하진 않을까가 첫 번째 걱정이고(그래서 한겨레21 원고가 가장 어렵다), 논리적으로 엉성하거나 뭔가 납득할 수 없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진 않을까가 두 번째 걱정이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그리고 나면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하다. 퀴어 집단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목표는 없다. 때론 누군가가 매우 불쾌함을 느끼도록 글을 쓸 때도 있다. 그저 명백한 오류, 사실 확인의 부족으로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칭찬을 기대하기보다는(칭찬 받으면 혹은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데헷) 적어도 사실 여부로 문제가 되고 싶진 않을 뿐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안 하길 잘 했다. 요즘은 정말 대부분의 글과 그에 따른 반응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만 돈다. 그 외의 곳에선 반응을 찾기가 어렵다. 드물게 블로그 댓글로 반응을 남겨 주시거나 별도의 방법으로 논평을 줄 때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다른 말로 SNS 시대에, SNS를 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 글이 아니라도)글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 수 없다. SNS는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만 이것은 SNS에 참여할 때의 얘기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더구나 주로 IT 관련 글을 읽는 구글플러스 같은 곳엔 전혀, 저어어어어어어언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일희일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긍정적 평가에 기고만장해서 긴장감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부정적 평가는 긍정적 평가보다 빠르다. 그래서 글에 문제가 있으면 또 어떻게든 관련 논평을 듣더라. 물론 그것도 극히 일부만 듣는 거겠지만. 아무려나 어떤 경로로건 제 부족한 글을 읽고 논평 주시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열심히 쓸게요. ㅠㅠㅠ (안 쓴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

수정한 문장: 퀴어문화축제, 한겨레21

루인, “춤추고 노래하는, 이것이 우리의 투쟁” 한겨레21 1018호.
나로선 놀랍게도 아직 한겨레21에 6주에 한 번 글을 연재하고 있다. 왜 놀랍냐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기획 자체는 무척 좋지만, 이것을 주간지에서 계속 끌고가느냐 중간에 자르느냐는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제한된 지면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때론 좋은 기획도 금방 끝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보다 주간지 연재 혹은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삼는 잡지에 글을 쓰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은 내가, 심지어 글쓰기도 많이 서툰 내가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처음엔 3회, 그 다음엔 5회를 한계로 잡았다. 그 정도가 되면 필진에서 짤릴 거라고 예상했다. 어찌된 일인지 아직은 글을 쓰고 있다. 이러다 1년을 채우나?
그럼에도 나는 처음 한두 번을 빼면 블로그에 연재와 관련한 글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남겨야 한다. 이번주 월요일에 출판된 글의 경우, 담당 기자에게 보낸 판본과 인쇄본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담당 기자에게 보낼 때부터 좀 불안했던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이 나온다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럴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나로선 정당한 구절이라고 믿지만 그럼에도 단지 그 한 구절로 인해 고소를 당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보냈다. 답장이 왔다. 그 구절과 관련한 내용을 자신이 모르고 있으며, 아무래도 문제가 될 것이라 수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처음엔 이름 정도만 수정했다. 담당자는 전체적으로 ‘수위’를 조절한 의견을 보내왔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은 주류 매체가 취해야 하는 조심스러움일 수도 있고, 어떤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담당자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수위를 조절한 내용으로 출판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쨌거나 이것은 잡지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의 판단이란 뜻이며 온전히 나의 책임이란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공적 문서에 기록되고 출판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수정된 문장이다.
일부가 축제 및 영화제 전체 구성원과 논의도 없이 이름과 역사적 성과를 전유해 만든 서울LGBT영화제는 그냥 올해 처음 생긴 영화제다.
다음은 내가 처음에 보낸 문장이다.
김조광수 씨를 비롯한 일부가 축제 및 영화제 전체 구성원과의 논의도 없이 이름과 역사적 성과를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탈취해서 만든 서울LGBT영화제는 그냥 올해 처음 생긴 영화제다.
아시겠지만, 나로선 최대한 조심스럽고 또 수위를 낮춘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