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다녀왔다

지난 주에 일이 있어 부산에 있는 한 절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스님의 법어를 들었는데 두 가지 단어를 새로 배웠다.

무상. ‘인상사 무상하다’고 하면 무상을 ‘허무하다’고 이해하는데 무상은 허무함이 아니고, 상이 없다 즉 모든 만물은 고정된 형태 없이 변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은 몸의 형태를 바꾸며 죽기도 하고 그런다고. 제행무상이 그래서 그런 뜻이었구나 싶었다.

양구(良久)라는 용어를 배웠다. 양구는 질문을 하면 답변이 올 때까지의 시간이라고 하셨다. 내가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을 받은 이가 나에게 답변을 주기까지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고 하는 것을 다 포함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자리는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그리하여 양구라는 용어는 고인을 추모하는 경에 나와 있는 용어였다. 다시 말해, 양구는 고인에게 나의 말을 전달하고, 나의 질문을 전달하고 그 답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마도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그 답을 듣지는 못할 것이고, 그리하여 양구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자 내가 던진 질문을 끊임없이 자문자답하고 또 자문자답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인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도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애도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무상은 그래도 들어본 적 있는 용어인데, 양구라는 용어가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책임감의 사회적 교훈

오늘자 건조 에디터의 말… MZ세대에게 책임감이 없다, 권리는 찾으면서 의무는 어쩌고 저쩌고 많이 말하는데, MZ세대는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를 동년배/동세대로 겪었고 이를 통해 어른들의 무책임함을 벼락 같이 배운 세대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충격적이었다.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내가 부끄럽다.

휴식

주말 내내 집에서 졸고 졸고 졸고 졸고 졸며 지내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너무 졸려서 낮잠도 자고 늦잠도 자고 그러고 있다. 그래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깨달았는데… 지난 주말에 단체 행사로 12시 넘어서 끝났고 대휴 사용 없이 계속 출근했고 그랬구나. 잊고 있었는데 이번주는 피곤할 수밖에 없구나.

주말 집에서 졸기만 하다가 요즘 책을 너무 안 읽나 싶어 살짝 반성을 했다. 반성도 습관이지만, 수업을 위한 논문 읽기 말고 그냥 읽은 책이 거의 없구나. 그와중에 한겨레에 신청했더니 당첨된 건지 사연에 그냥 보내준 건지 모르겠지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를 받았다. 매우 감사했고 당분간 바쁜 일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어야지. 앞에 메모를 적어주셨는데, 공통 문구겠지만 그럼에도 감사하기도 하고, 재난과 안전은 언제나 화두니까…

지난 수업에서 얼버무리며 한 이야기가 있는데, 언젠가 한 선생님이 내게 퀴어와 트랜스젠더퀴어의 고통과 관련한 이야기가 중심이고 즐거움, 쾌락 등을 다루지 않는다며 그와 관련한 논의도 같이 해보라고 제안했었다. 퀴어를 고통과 피해로만 재현하는 것에 비판적이니 그 말을 새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ㅋㅋㅋ 한때는 모든 청탁 원고의 내용이 퀴어의 죽음이었다… 그나마 이번에 논문 하나 준비 중인데 이 논문은 희망 혹은 유토피아를 모색할 수 있으려나. 성과 폭력은 너무도 짝패마냥 붙어 있어서 폭력과 우려와 염려와 차별을 뺀 퀴어 논의를 모색하는 작업도 필요할텐데(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으려나…;;;

암튼 좀 쉬고 작업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