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즈음 검사를 해야 했는데 미루다가 9월 마지막 날에야 건강검진을 했다. 그러며 작년 11월 즈음 하기로 한 초음파 검사도 같이 했다.


초음파로 간을 보던 의사는... 세상에 이런 간은 처음 본다는 반응을 했다. 간미인이다, 간이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간은 처음본다며 ㅋㅋㅋ 제가 혈액 검사를 하면 간 수치는 잘 나옵니다만... 그런데 연신 간을 보며 칭찬을 해서 좀 웃겼다. 사실 초음파 검사를 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고 그래서 간의 상태가 좋은 사람은 별로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겠지만, 연신 간미인, 간미인이라고 해서 웃겼다.

검사가 끝나고 애인님과 이 이야기를 하다가, 비인간 동물의 셍간을 회로 먹기도 하니, 나의 간이 그렇게 싱싱한 간이라는 드립을 주고 받았다.

나는 종종 혹여 사고가 나거나 뭔 일이 있을 때 장기기증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서명을 해둬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는데, 그때마다 줄만한 기관이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간은 기증할 수 있겠다 싶어, 올해 바쁜 일 끝나면 장기기증 서명을 해둘까 보다.


원래 목적은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이것 역시 연신 감탄하셨다. 그러며 내가 술담배를 했고 과음 과식을 했다면 벌써 탈이 나서 실려 갔을 거라고. 제가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좋아할 뿐 나름 식단관리는 합니다... 늘 양심과 욕망을 조화시키지요... 예를 들면, 라면(욕망)에 밥 대신 냉동 컬리플라워 라이스(양심)를 말아 먹는 식... ㅋㅋㅋ

아무려나 연신 감탄을 한 의사는 약을 처방해줬다. 이 약이 증상 발현을 막는 효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간의 진행은 막는 정도의 효과는 있다니 먹어보는 거지, 뭐.
(담석 검사 함)


2022/10/01 12:49 2022/10/01 12:49
코로나19가 지금보다 더 위급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때, 하지만 지금보다 확진자가 더 적었던 그때 K방역은 국뽕의 선두에 있었다. 서구 선진국이라 불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방역 체계, 그리고 대량 생산되고 있던 진단키트와 마스크는 K방역의 상징이었다. 이에 대한 서구 사회의 상찬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 소개되었다.

진단키트와 마스크의 효과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되었고 많은 생명을 살리는데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니 국뽕을 빼도 그 효과와 성과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은 K방산이다. 한국에서 생산한 전차 등이 유럽 등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몇 조 원의 계약을 맺었다, 어떻게 한국은 방산 강국이 되었나를 소개하는 기사는 훨씬 심란하고 괴롭다. 이것은 명백하게 러시아 침략 전쟁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자국의 이해와 맞물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적극 지원하고 있고 그렇게 빈 전력을 한국 기업이 생산한 무기로 채우고 있다. 호주도 계약을 했다, 중동 지역 몇몇 나라도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지속적 침략에 대항해야 하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무기는 필요하다. 이것은 생존 투쟁에 있어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한국 방산업체의 무기가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겠지. 그럼에도 전쟁 무기 생산, 살상 무기 생산 강국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일일까. 지금은 저항 행위에 지원되겠지만 언젠가는 민중 봉기와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 사회를 향해 사용될 수도 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외국 여러 나라에서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최류탄이 한국 기업이 생산한 것이다. 이걸로 종종 비판하는 기사가 나온다. 마찬가지다. 지금은 K방산이 유용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누군가를 학살하는 용도일 때도 유용할까. K방산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전쟁 수혜처럼 말해질 때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아니 부끄러워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랑하고 K방산이라 부르며 좋아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어떤 좋은 일은 떠들어도 좋겠지만 어떤 일은 해당 산업 종사자에게 의미있는 성과일 때에도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목숨이 달린 일이고, 방산 산업 종사자도 전쟁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해서 개발했지 전쟁으로 이득을 보고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곳에 계신 분들은 훨씬 심란한 마음이지 않을까.

요즘 들어 방산과 관련한 한없이 긍정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심란하다.


2022/09/04 17:02 2022/09/04 17:02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에스터 뉴턴이 나를 게이로 만들었다]를 봤다. 놓칠 뻔 했는데 알려주신 분이 계서 덕분에 봤고 알려줘서 무척 감사하다.

이 다큐는 여러 감동과 논쟁점이 존재하기에, 그냥 영화제에서 두 번 상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고 토론이나 퀴어영화제의 큐톡처럼 뭔가 추가의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다큐였다.

이 다큐를 보고 나면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한 가지만 남기면...

에스터 뉴턴은 이번 다큐가 처음 찍은 다큐가 아닌 듯했다. 다큐일지 아닐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번 다큐에 과거에 촬영한 영상을 활용하는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행사 참여 영상만이 아니라 다큐처럼 에스터 뉴턴을 촬영한 영상이 종종 등장했고, 나는 이것이 매우 부러웠다.

한국에서 종종 퀴어 다큐가 나오는데, 많은 경우 그 다큐는 최근 새롭게(5년에서 10년 정도?) 활동하며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는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작업이 소중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다큐와 함께, 26년 정도 활동한 활동가나 연구자의 다큐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오래 활동한 활동가와 연구자의 고민이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퀴어 운동과 역사가 계속해서 연결되는 사건으로 구성되기보다 단절적이고 갱신되기만 하는 의제로 인식되는데 영향을 끼친다고 고민한다. 그래서 25년 안팎으로 활동한, 현재 쉰 살 전후의 활동가와 연구자를 다룬 다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힌 이들이 다시 나이 들어 20년이 지났을 때, 그때 또 다큐를 찍으면 좋겠다. 이것이 에스터 뉴턴의 이번 다큐와 같지 않을까... 퀴어 인물의 역사를 축적하는 것. 무엇보다 1990년대 즈음부터 혹은 2000년대 초반 즈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와 연구자의 다큐를 보고싶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나 새롭게 촬영한 다큐도 보고싶다.

얼마 전 3xFTM 상영회가 있었다. 일전에 3xFTM의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이 다큐를 지금 다시 편집한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더니 편집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애석한 것은 3xFTM 이후 20년이 지났을 때 다시 그 인물들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199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젠더퀴어 문화를 다룬 [젠더노츠]라는 다큐를 매우 좋아하는데, 20년 뒤 동일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젠더레이션] 또한 매우 좋아한다. 이런 기획이 한국에서도 진행되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3xFTM의 20년 뒤 판본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슬프다.

에스터 뉴턴은 이번 다큐에서, 후배 연구자에게 "퀴어의 생존은 의무"라고 말했다. 내내 웃으면서, 혹은 고민하면서 보다가 그 말에 엉엉 울었다.

몇 달 안 있으면 한무지의 10주기다. 생존이 의무라는 말을 나도 지킬 자신은 없지만, 그럼에도 의무감으로라도 생존했으면 좋겠다. 떠난 사람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2/09/01 11:43 2022/09/01 11:43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