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글과 공개할 수 있는 글과 (정식)출판할 수 있는 글의 간극


나의 게으름만 극복한다면 쓰고 싶은 글은 모두 쓸 수 있다. 원하는 주제로 뭐든 쓸 수 있다. 비록 매우 엉성하고 어설프다고 해도 쓸 수는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지만 노력하면 쓸 수 있다. 이를 테면 작년 여름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지만 능력 부족으로 연기한 적 있는데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글을 공개할 수 있느냐, 그 글을 출판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공개할 수 있는 글이 아니며 출판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글쓰기와 공개 결정 사이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칼럼에 쓰려고 몇 달 전부터 벼른 소재가 있다. LGBT 공동체에서의 SM 혐오와 배제, 동성애 공동체에서의 공공연한 바이 혐오와 배제, 트랜스젠더 공동체에서의 비이성애 혐오와 동성애 공동체에서의 트랜스젠더 혐오, 그리고 이성애-비트랜스젠더의 비이성애-트랜스젠더 혐오와 배제를 직조해서 글을 쓰려고 했다.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단 네 번만 쓸 수 있다면 그때 꼭 쓰겠다고 추린 소재 중 하나다. 연재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고 당장 마감해야  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E와 얘기를 나누다가 급하게 쓸 소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설프게 썼다간 비이성애-트랜스젠더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집단에게 ‘너네들[LGBT 혹은 퀴어]도 서로 혐오하고 배제하는데 내가 너희를 혐오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빌미만 줄 수 있겠더라. 이 주제는 어떻게 써도 이런 빌미를 줄 수밖에 없다. 텍스트 해석은 독자의 몫이니까. 그럼에도 만약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긴 시간을 들여 조심스럽게 쓰고 충분히 검토한 다음 출판해야한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촉박한 일정에도 소재를 바꿨다.
쓸 수 있는 글과 공개할 수 있는 글과 (정식)출판할 수 있는 글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하지만 또 조금만 고민하면 이 간극은 내 상상력의 한계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먼저 선을 그은 것이기도 하고 내가 먼저 겁을 먹은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 간극을 줄이는 작업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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