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의 위계, 나와 나의 고양이 바람

인간도 동물이니 인간과 비인간으로 구분해서 얘기하면, 난 인간과 비인간 간에 위계가 없다고 믿지 않는다. 없을리가 있나. 생명의 동등함은 지향하는 가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이 동등하다면 지금 이런 글 자체를 쓰지 않겠지.
바람과 나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날 집사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내가 서열 상 아래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서열 상 더 위에 있다는 뜻이다. 바람의 생활방식에 내가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나의 노동이 없다면 바람의 삶이 위험할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미쳐서 혹은 다른 어떤 독한 이유로 바람의 목숨을 끝내야겠다고 작정하면 그렇게 못 할까?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집사로 사는, 고양이를 숭배하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바람의 혹은 집에 사는 고양이의 안위는 온전히 집사를 자처하는 사람의 ‘선한 마음’에 달려있다. 정말 위험하고 또 불안한 상황이다. ‘선한 마음’ 혹은 애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고양이의 삶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실제 적잖은 고양이가, 집사의 선한 마음이 끝남과 동시에 버려지고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집에 사는 고양이의 생사여탈권이 집사에게 있다는 건, 집사의 선한 마음 혹은 책임감에 있다는 건, 둘의 관계가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고양이를 마냥 숭배할 수도 없고 좋게만 그릴 수도 없다. (그래서 “개와 토끼의 주인”이란 웹툰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선한 마음’ 혹은 ‘책임감’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인간과 비인간은 동등하다고, 정말 사랑하니까 동등하다고 말하지 않고 이 위계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다시 고민할 수 있을까? 인간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 인간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독점되어 있다고 말해봐야 별 의미는 없다. 이런 식의 언설이 통할 거라면 이 지구는 이미 부처님 뱃살이었겠지. 설득하지도 않고, 동정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관계를 다시 사유할 수 있도록 흔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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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떤 일과 관련한 고민 메모입니다. 혹은 답장은 아니지만 답장과 비슷한 성격의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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