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 없는 잡담

ㄱ.
화제였던 것 같은 김혜나의 <정크>를 일전에 읽었다. 한줄 평가하면, 일단 소설부터 좀 잘[제대로] 쓰고… 소설부터 잘 쓰면 그때 그 소설로 다시 논평하겠습니다…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ㄴ.
어쨌거나 <정크>는 게이가 주인공이니 퀴어락에 등록해야 할까? 한 권 더 구매해야 하는데 그 돈이 아까워… 헌책방에서 구하는 것도 아까워… 어떡하지… 이 책 구매해서 읽고 내놓으실 분 계시면 퀴어락으로 버려주세요… 히히.
ㄷ.
-성적소수자를 지지하면 곧 성적소수자의 입양권도 지지해야 하는가?
-동성결혼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호모포비아인가?
… 이것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이슈인가요? 퀴어 공동체 및 퀴어 학제에서도 각자의 다양한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말 그대로 여전히 논쟁적 이슈 아닌가요?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ㄹ.
혐오와 인권감수성 돋는 표현을 가르는 분명한 대답 혹은 정답이 있다면, 저는 그 정답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슈를 공부하겠습니다. 혐오와 지지를 분명하게 가르는 정답이 있다는 인식,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문제의식이 있어 공부를 하기도 하는 저로선 때때로 난감해요.
며칠 전 교황선출과 관련해서 추기경 중 여성이 없음을 두고 MBC 기자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던가, 구시대적이라고 했던가. 이런 논평은 명백히 박근혜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큰데, 여성이 참여하면 곧 성차별 없고 (적당히) 진보인 걸까? 다른 한편 ‘동성’을 성추행했다고 고소당한 추기경도 많은데, 그럼 비(규범적)이성애자 추기경이 꽤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은 왜 평가를 안 하지?
어느 한두 가지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그 특유의 폐쇄성을 좀 더 복잡하게 사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사유하기란 정말 어렵구나… ㅠㅠㅠ
ㅂ.
며칠 전 수업 교제로 벨 훅스를 (다시)읽었다. 읽고 좌절했는데 나는 벨 훅스처럼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안 될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벨 훅스의 대중적 글쓰기와 관련해서 지혜 선생님의 깔끔한 요약은, “벨 훅스는 대중적으로 쉽게 쓰기 위해 내용을 희생하지 않고, 내용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형식을 바꾼다.”
대중적 글쓰기, 쉬운 글쓰기는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전달함이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복잡하게 다루되 이것을 전달할 형식을 바꿈이다.
ㅅ.
벨 훅스의 책은 정말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빼어난 성찰이 많은데도, 신기할 정도로 한국에 번역도 많이 되어 있는데도 의외로 안 읽히는 경향이 미스테리. 내가 벨 훅스의 초기 4부작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해서 이러는 건 아니고.. 흠.. 흠.. ;;; 물론 종종 오드르 로드(오드리 로드)로 처음 공부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고민을 하지만요…

14 thoughts on “두서 없는 잡담

  1. ㄱ,ㄴ – <정크>는 정크인 거군요. 읽기는 읽어야 할 텐데.. 후아.. 트위터로 기증을 원한다며 광고나 때려 볼까요? 키키. 근데 원래 사비로 구입할 생각이셨던가요?

    ㄷ,ㄹ – equal marriage 와 비이성간 커플의 입양 문제는 (현재 영미권에선) 모든 이슈를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 같은 느낌이 들고, 거기에 대해 혐오와 다른 맥락으로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활동을 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쉽지 않은 느낌이네요. 결혼과 가족 이후에 LGBT 운동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고요…(T에 관해서라면, 영미권 + 유럽에서 법적 성별변경 이슈가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된 다음에는… 이라는 궁금증도 있구요. 그러나 한국에선 이 무슨 꿈 같은 소릴 ㅠㅠ) 그나저나 뭔가 구체적인 사안이 얽혀 있는 고민을 하신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듣고 싶어지네요.

    ㅁ – 요전에 동성 사제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문제되어 결국 콘클라베 직전에 사퇴한 키이스 오브라이언 전 스코틀랜드 추기경의 경우, 호모포비아 발언으로도 유명했지만 사제의 (이성)결혼을 지지하는 나름 파격적(?)인 주장을 했더라구요. 말씀하신 것과 별 연관은 없겠으나 흥미로운 지점…(…) 그나저나 가톨릭 수도사들의 동성간 성/관계나 사제의 어린이에 대한 성추행 등의 문제가 간간히 불거지곤 하는 게 반드시 침소봉대일지는 의문이…

    ㅂ, ㅅ – 주제와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내용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형식을 바꾸다니! ㅠㅠ… ㅠㅠ… 찬찬히 읽어보면서 고민해봐야…

    버틀러 님의 인기를 생각해 보면 벨 훅스 언니는 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반응이 없는 편인 것 같은…

    네, 오드르 로드 말씀이군요. 받들겠습니다 *ㅅ*)>

    1. 네.. 정크는 정크…;; 일단 소설이 재미가 없어요.. 정말 지루해서 간신히 읽었달까요… 트위터 광고 좋아요!
      퀴어락에 제가 기증하는 책은 다 사비로 구입했는데요.. 이 책도 ‘차마 집접 구매하고 싶지는 않지만 읽어는 보고 싶어’라는 분들이 퀴어락에서 읽을 수 있도록 구비하고 싶었어요. 근데 헌책방이나 중고매장에서 원가의 70%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되고 더 떨어지질 않네요.. 원가의 30% 수준이면 딱 좋을 텐데요…

      어떤 이슈가 더 중요하고 어떤 이슈는 덜 중요하고와 같은 식으로 이슈의 경중을 함부로 나눌 순 없겠지만, 동성결혼이 모든 LGBT/퀴어의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것 같은 현재 분위기는 확실히 문제라고 느끼고 있어요. 한국에선, 여러 퀴어 공동체에서 어떤 식으로 논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몇 유명인사로 인해 휩쓸릴 것 같은 걱정도 있고요. 삶의 양식으로서 가족구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최우선 이슈로 나오는 것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영미권의 경우엔 동성결혼 이슈가 인종+계급 이슈와 매우 밀접하단 느낌이 강한데 한국은 또 어떻게 구성될지 궁금하기도 해요.
      이 말을 던진 계기엔 어떤 구체적 사안이 있긴 해요… 어떤 글을 읽고 좀 심란했달까요.. 자세한 건 나중에…;;;

      가톨릭 수도사의 동성 간 성/관계나 아동 성폭력 이슈는… 빙산의 일각이겠죠? 이 이슈를 좀 더 복잡하게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추문 혹은 이성애-아동 성폭력 프레임이 아닌 좀 다른 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 고민이 짧아서.. 흑.. ㅠㅠㅠ

      전 벨 훅스 님을 읽으며 좌절을 겪었지만 비공개 님은 부디 성공하시기를…!!!
      버틀러의 인기에 비해 벨 훅스를 향한 무반응도 신기하지만, 버틀러의 인기에 비해 그 인식론을 자신의 기본 인식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점도 참 신기하달까요.. 그냥 유명인을 소비하는 느낌도 많이 들어요.. ;ㅅ;

      요즘 오드르 로드를 매일 조금씩 읽어볼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흑.. 제가 게을러서.. 흑.. ㅠㅠㅠㅠㅠㅠㅠ

    2. 가톨릭 사제 관련해서- 맞아요 추문이나 스캔들 이상의 이슈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프레이밍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돼요. 저는 한때 어쨌든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의 사제가 많으면 좋은 일이 아닐까 하고 단순히 생각했지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퀴어 신자에 대해 더 가혹할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전환치료’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곤 한다고 의심해요. 다른 얘기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양성애자가 아닐까 고민했던 경험이 있는, 하지만 그렇게 정체화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대체로 양성애/양성애자에 대해 가장 가혹한 태도를 취하더라는 개인적 경험과 맞물려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긴 합니다…

      한국에 강림(?)한 지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붙으면 그의 학문적 맞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버틀러에 대한 관심도 어느 정도 재/점화되지 않을까요? 부디 생산적 방향으로 그렇게 되기를…(꿈은 크게, 희망적으로….)

      오드르 로드… 무슨 책 읽으시나요? 분량 정해 놓고 같이 읽을까요? 아아… 하지만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는 루인 님께는 부적절한 농담이군요 ;ㅅ;

    3. 갑자기 이요나 목사가 떠오르네요.. 자신의 과거를 죄악으로 설명하며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 태도가 비공개 님이 말씀하신 그런 거겠죠? 자신의 역사를 전면 부인하기 위해 더 가혹한 태도를 취하는 건, 단순히 의심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론 이런 태도가 특정 범주를 형성하는 흔한 방법이기도 한데, 혐오를 통한 자기 범주 형성은 그 자체로 자기 범주를 부정하는 태도라고 비판하고 싶지만.. 뭐, 이런 얘기가 얼마나 가닿을까 싶고요…
      암튼 현재의 답답함을 다른 식으로 풀 프레임이 필요한데.. 이건.. 그럼 비공개님께서 멋지게 해 주실 거라고 믿을 게요! (매우 적절한 결론이다! 후후.)

      “[단독] 지젝의 한국 강림에 삘받은 버틀러, ㅇ대학에 강림하다!”라는 기사가 나면… 지젝을 좋아해주겠어요… 물론 버틀러 강좌만 들으러 가겠지만요. 크크.

      오드르 로드는 일단 Sister Outsider를 읽을까 하고 있어요. 부분적으로만 읽고 책으로는 아직 안 읽었거든요. 근데 하루에 한두 문단 정도 읽는 수준으로 진행할까 어떨까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자신이 없달까요…
      사실 농담이라고 마무리하신 그 제안을, 앞의 앞글을 달며 1초간 떠올렸지만 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웠다지요.. ;ㅅ;

    4. 네… 뭐 기대도 실망도 제 몫이 아니니까요… 라고 예전에 어떤 훌륭하신 분이 그 비슷한 말씀을…

    5.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비공개 님께서 부정은 하지 않으셨으니 말씀을 믿고 양껏 기대하겠습니다.. 후후.

    6. 무서운 분이군요… 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대체 어디서 나오는 기대인 거죠… ㄷㄷㄷ

    7. 비공개 님께서 하신 말씀과 고민에서 나온 기대지요.. 후후
      (이렇게 책임 회피하기?)

  2. 김혜나 씨의 첫 작품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결정한 민음사(그리고 심사위원들)가 나쁩니다……
    첫 작품도 엉망이었거든요. 전 절대 안 읽을 거 같아요. 이전 작품이 너무 별로라. 기증은 못할 거 같아서 죄송…… 크크크-

    1. 책을 읽다가 ‘역시나 대형출판사의 영업력이 甲이야’라고 구시렁거렸죠. 이 작가를 두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돌파구”라니.. 정말 주례사 비평도 이 정도면.. 어휴…
      정말 다시는 읽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책을 사서 읽었는데 소장도 하고 싶지 않은 분이 있으면 기증해주길 바랐달까요.. 흐흐.

    1. 히히 고마워요! 조금 읽고 있는데 종종 들려서 읽을게요.
      저는… 블로그 하나로 넘쳐요… 사실 요즘은 트위터에 쓸 글로 블로그를 때우는 느낌도 좀 있지만요.. 아하하.. ㅠㅠㅠ
      그래도 행여나 만들면 알려드릴게요!

  3. ㄷ.까지 읽고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뭔가 뭉실뭉실 하고싶은 말이 피어나서 막 타이핑을 하려다가, 끝까지 다 읽자니 오드리 로드가 나와서 그냥 오드리 로드 이야기가 더 하고 싶어졌어요. 오랜 팬이라서요. 오죽 그녀를 지금-여기의 부대낌들 속에서 거듭 기리고자 할 만큼 그녀를 애정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이름을 딴 단체까지 있어 활약 중일까마는 하여튼 저도 오드리 로드가 정말 좋아요. 오드리 로드가 흑인/레즈비언/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들”을 거듭 강조하고, “침묵”을 깬 “당사자”의 “말하기”를 가장 중시하고, 압제와 피억압을 뚜렷이 갈라 전선을 긋고, 유방암으로 잃게 된 가슴을 애도하며 “온전한” 자기 몸을 그리워하는 그 서사들을 통해 자기가 사용하는 범주들을 (루인 님이 잘, 그리고 정말 적절히 쓰시는 표현처럼) “내파”하는 방식은 언제나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구구절절 수다가 떨고 싶어지네요.

    1. 전 종종 오드리 로드로 페미니즘을 처음 공부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요. 벨 훅스를 만나고 읽으면서 오드리 로드를 알게 되었거든요. 책으로는 못 읽고 짧은 글만 몇 편 읽었는데… 아, 그 설레는 힘이란! 그래서 오드리 로드로 공부를 시작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리곤 해요. 올해는 단편이 아니라 책으로 읽고 싶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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