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추석, 바람

01
매우 날선 언어만 쏟아부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까? 각자의 욕망, 혹은 사회가 요청하는 욕망을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법을 익히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 수록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 “결혼해야지”라는 말이 “언젠간 결혼하겠지”로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아직 미련을 갖고 있지만 기대를 접어가는 시간. 짠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참… 결혼이고 뭐고 간에 일단 연애부터.. 크크크. ( “);;
02
바람 혼자 집에서 지내야 해서 무척 걱정했다. 혼자서도 어떻게든 지낼 거란 건 알고 있다. 고양이니까. 하지만 하루의 몇 시간을 혼자 지낸 적은 있어도 사흘 정도 혼자 지낸 적은 없다. 그래서 걱정이었다. 못 지낼 것이 걱정이 아니라 우울해하고 심심할 것이 걱정이었다.
출발하는 날, 바람도 눈치를 채고 문 앞까지 따라왔다. 끼앙, 끼앙 울면서 가지 말라고 했고 나도 걱정을 많이 했다. 혼자 어떻게 지낼까.
돌아온 날, 문을 열자… 두둥. 바람아… 너 많이 화가 났구나…
화장실 모래를 바깥으로 흩어놓은 건 기본이요, 심지어 응가까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이불은 매트리스 아래에서 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료를 토한 덩어리가 서너 군데 흩어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바람은 나를 보자 우앙, 우앙 울면서 서러워했다. 구석에 들어가선 계속 우는데, 내가 쓰다듬어주면 골골 거리고 집 청소하려고 떨어지면 울고. 구석에서 나올 생각도 않고 계속 내가 자기 곁에 붙어 있길 바라는데… 이 녀석이! 이 번거로운 녀석!
바람이 구석에서 나왔을 때 잽싸게 붙잡아선 마구마구 괴롭혔다. 후후.
03
본가에 갔을 때 박사진학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했다. 석사과정 진학은 무척 싫어했지만 이젠 포기한 것일까? 이왕 석사했으니 박사까지 끝내길 바라는 욕망인 걸까? 사실,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고 말하면 반대할 줄 알았다. 그래서 좀 놀랐다.
+
쉽고 재밌으면서 제가 전하려면 메시지를 모두 전할 수 있는 강의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네, 불가능한 꿈입니다. 킁.

2 thoughts on “[고양이] 추석, 바람

  1. 아, 다른 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사료를 토했다니?
    바람이 스트레스 받아서 사료를 토한 걸까요……
    설마 항의의 표시로 토했을 것 같지는 않고……(하긴 바람이라면 그런 고도의 안티가 가능할지도…..;)
    이제 화는 많이 풀리고 평소대로 돌아왔나요? ㅎ

    1. 화가 안 풀렸는지 제 몸에 붙어 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흐흐. ;;;

      토하는 건… 예전부터 그랬어요. 가끔씩 사료를 그대로 토하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난번 건강검진 때 괜찮다고 했으니 그렇다고 믿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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