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리카, 5월 28일의 기록

01
언젠가 장례식장은 축제 같다고 적었다. 친척 장례식장에서 사흘을 보내며 느낀 점이었다. 장례식과 축제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단어지만 사실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했다.
02
5월 28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신경을 쓰면서도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빴다. 28일 아침에 혈액검사를 하고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기에 온 신경은 핸드폰에 머물렀다. 다들 들뜬 분위기였다. 햇살도 뜨거웠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시간은 오전 11시 28분. 핸드폰 액정엔 동물병원 이름이 떴다. 느낌이 안 좋았다. 잠시 망설였다.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거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의사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몇 분 전 리카가 숨을 거두었다는 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나의 반응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의사는 잠시 시간을 준 후, 몇 가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장례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장례절차를 아직 못 알아봤다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사에게 물었다. 일반화장과 개별화장이 있다고 했다. 여러 동물을 한 번에 화장하는 일반적 화장(몸무게에 따라 비용을 책정한다)과 혼자 화장하고 유골을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개별화장, 두 가지를 알려줬다. 개별화장은 비용이 꽤나 비싸고, 일반 화장도 정성스럽게 진행하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좀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당장 갈 수는 없고 이따 오후나 저녁 즈음에 가겠다고 했다.
03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시준비를 계속했다. 행사는 오래 전에 약속한 일이자 기획한 일이고 일손도 부족하여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면 일손은 아쉬워도 먼저 떠나는 것을 만류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냥 남았다. 외면하기 위해서. 리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싶어서.
햇살은 따가웠다. 준비는 끝났고 자리를 지킬 일이 남았다. 자리에 앉자 맥이 풀렸다. 멍하니 아무 곳이나 바라보았다. 내가 어디있는지 헷갈렸다. 들뜨고 즐거운 사람들 틈에서 나의 감정은 헛돌았다. 첨엔 그 헛도는 감정에 안도했다. 어쨌거나 조금은 더 미룰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버거웠다. 5시까지는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뭔가 지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어딜 가야 하는데 자꾸 외면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찍 일어섰다.
04
평소와는 달리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리카가 나간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리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잠깐 문밖에 나갔다가 곧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아직은 낮시간이었고 나는 하염없이 리카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리카가 떠났다는 것을.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몸 한 곳이 허했다. 텅 빈 느낌이었다. 리카는 늘 문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나를 떠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살았던 역사가 있기에, 바깥을 구경하려고 했다. 문 밖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지만 늘 문 앞에 멈췄다.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28일 아침 리카가 문 밖으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난 꿈을 꿨다. 떠날 것이라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줄 것이지…
05
집에 먼저 들렸다. 이동장을 챙겨야 하는지 필요 없는지 몰랐기에 혹시나 싶어 이동장을 챙겨야 했다. 바람은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바람의 이름을 부르다 울기 시작했다. 바람아… 네 엄마가…
내 얼굴을 수습하고 병원으로 갔다. 텅빈 이동장이 유난히 무거웠다. 건강을 회복한 리카를 이동장에 넣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병실로 간 의사는 천으로 덮은 무언가를 가져왔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와 의사 그리고…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고 의사는 안타까워 했다. 나는 의사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았다.
차마 천을 들춰볼 엄두가 안 났다. 한쪽 끝을 조심스레 들었다. 가지런히 모여 있는 뒷발이 보였다. 싸늘한 다리. 두 다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반대쪽 끝을 들었다. 의사는 자리를 비켜줬다. 리카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는 굳어버린 얼굴, 호흡을 멈춘 얼굴, 사후 수습을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피가 나는 얼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얼굴을 살폈다. “이 녀석아… 왜 눈도 다 안 감고 떠나는 것이냐… 눈 감을 힘도 없었던 것이냐…”
리카의 두 눈은 반 정도 열려 있었다. 27일 저녁 리카를 봤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반 정도만 간신히 뜨고 있던 눈, 아니 차마 더 감을 힘도 없어 뜰 수 밖에 없는 눈. 얼굴을 쓰다듬다가, 다리를 쓰다듬다가, 싸늘하게 식은 몸,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이제는 딱딱하게 굳은 몸을 쓰다듬다가, 다 감지도 못 하고 뜬 눈이 서러워 눈물이 났다. 눈을 억지로 감겨주려고 했지만 사후경직으로 눈을 감길 수가 없었다. 눈을 감길 때마다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다시 떴다. 그것이 살아 있는 눈의 움직임이라고 믿고 싶었다.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특히 얼굴을 쓰다듬을 때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피는 아직 덜 굳은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도 무엇이건… 쓰다듬기를 멈췄다. 괜히 내가 또 괴롭히는 것일까 싶었다.
혼자 보낸 것이 미안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곁에 있지 못 해 미안했다. 리카가 눈을 감을 때 곁에 있고 싶었는데, 내 품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는데… 리카가 눈을 감을 때 그 자리는 내 무릎이길 바랐는데… 리카가 좋아해준 나의 책상다리이길 바랐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의사는 리카와 좀 더 있다가 마음이 수습되면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지금 얘기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리카와 둘이 더 있어봐야 울기 밖에 더하겠는가.
06
장례절차를 얘기했다. 일단은 개인화장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간이 급격하게 나빠진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부검을 의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부검을 하면 정확한 사인과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이후 화장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검을 하면 부검 비용은 들지 않으며 화장비용은 지급하면 되지만 유골을 수습할 수 없다고 했다. 개별화장을 하면 원인은 확인할 수 없지만 유골을 수습할 수 있다고 했다. 고민했다. 어떤 것이 좋을까… 의사는 나와 살고 있는 다른 고양이를 걱정했다. 유전일 가능성은 없거나 적다고 했다. 행여나 감염 혹은 전염일 경우, 단순 혈액검사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DNA 검사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20만 원 가량이라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한다면 사전에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개별화장은 기본이었으며 그저 바람의 건강을 어떻게 확인하느냐가 관건이었다. DNA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 갈등했을 뿐이었다. 개별화장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추운 겨울을 살아 내게 왔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어리숙한 집사와 살았던 리카… 리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나랑 15년 이상을 같이 살기로 했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장례사에게 전화를 했고 29일 낮 12시에 만나 같이 가기로 했다.
07
바람에겐 아직 제대로 말을 못 했다. 하지만 병원에 다녀왔을 때 나를 보는 바람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리카와 함께 돌아온 것일까?
08
집이 텅 빈 느낌이다. 바람도 알고 있는 듯하다. 자꾸 칭얼거리면서 빈 자리를 찾는다. 바람과 앉아 있는데 빈 자리가 너무 크다. 리카가 머물던 모든 자리가 텅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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