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후일담

01
KSCRC 기획으로 진행한 “남성성” 강좌 중, 내가 맡은 시간이 어제였다(트랜스젠더의 남성성과 의료기술을 통한 젠더 구성, 뭐 이런 내용을 했다). 긴장도 이런 긴장이 없어,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거나 그 시간이 지나가서 다행이랄까. 흐흐. 두 시간 동안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시간을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준비한 내용 중 안 했거나 못 한 내용도 좀 있었지만, 전체 흐름 상 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강의 시간을 못 채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강의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으면 해야겠다고 준비한 별도의 이야기까지 있었다. -_-;; 물론 어젠 못/안 했다. 예전에, 이정도면 시간이 살짝 부족하겠다 싶을 정도로 준비했다가 시간이 좀 많이 남아 주최측에 무척 미안했던 적이 있어, 시간 걱정을 좀 많이 했다. 흐.)

아무려나 오늘 아침부터 어제 내가 했던 강의 내용 중 문제가 되거나, 부족하거나, 뭐 이런 저런 불만스러운 부분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있다. 흐흐. 아직은 이런 자학을 좀 더 경험해야 할 시간. 이런 경험들도 시간이 지나면 몸에 익겠지. 자학이라도 하면 다음엔 눈곱만큼이라도 더 잘하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이 없다면 거짓. 하지만 자학만(!) 하면 아무 소용없다. 흐흐.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은 크게 두 가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연관관계가 밀접한 내용들을 이야기할 것인가가 하나고, 전혀 무관한 것처럼 여겨지는 내용들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적절하게 설명할 것인가가 다른 하나. 그리고 모든 강의에서 유의해야 할 내용은, 사람들이 이 정도는 알겠지, 라고 가정하는 바로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 어젠 이 유의사항을 간과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좋았던 건, 어떤 두 이야기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을 못 했는데, 강의하는 도중에 깨달았다. 발화하는 행위, 글을 쓰는 행위는 이래서 좋다. 고민만 할 때는 갈피가 안 잡히던 내용들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말을 하는 과정에서 갈피가 잡히기 때문이다.

암튼, 어제 강의를 녹음한 파일에서 몇몇 부분은 녹취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글로 쓰고 싶은 부분의 아이디어와 얼개를 제공하고 있어서. 하지만 과연 내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내가 들을 엄두가 날까? 흐흐.

02
어찌된 일인지 어젠 새벽 1시 30분이 되도록 잠이 안 왔다. 첨엔 올 해 처음 한 강좌라 그 흥분의 여파때문이려니 했다. 근데 아니었다. 그냥 잠이 안 왔다. ;;; 더 큰 문제는 어떻게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 즈음 잠에서 깼다는 것. -_-;; 마신 커피의 양은 평소와 비슷했다. 봉지커피 10개에 어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하나는 카페에서 마신 아메리카노의 카페인 효과가 강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봉지커피의 특이할 것 없는 조합이 만든 효과. 어제 마신 봉지커피는 아라비카 4개(이건 설탕커피)에 슈프리모 1개(이건 설탕 없는 블랙)를 섞은 것이 두 번. 이 조합이 의외의 카페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오늘도 동일한 조합으로 마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각성하는 느낌이 확연히 느껴진다… -_-;; 나만 이런 건가? 혹시 심심하고 커피란 자고로 카페인이라고 믿는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 쯤 실험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물론 뒷일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케. 케. 케.

근데 작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연례행사인가? 푸핫.

18 thoughts on “강의, 후일담

  1. 아이고. 저번에 루인님께서 커피를 좀 줄이신다고 하셨던게 생각이 나네요. 그 땐 저 정도 양을 드시는 줄 몰랐었는데 상당히 드시는군요! ‘ㅡ’;; 저도 많이 마실 땐 비슷하게 마시는것 같아요 흐흐흐 요즘엔 홍차로 전향해서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셔요. 그나저나 저도 카페인과 관련된 생체실험(?) 방법을 하나 알고 있어서요. ㅋㅋ 마운틴 듀(카페인이 많은 탄산음료)에 박카스를 한 병 섞고 타이레놀 2알과 함께 복용(이건 복용수준이지요ㅋㅋ)하면 엄청난 각성 효과를 얻는다더라구요. 아직 실제로 시도해보지는 못했어요. ㅎ

    1. 그러고 보면 커피는 만날 줄인다는 선언만 하는 거 같아요. 흐흐. 이른바 ‘선언의 왕’이랄까요… -_-;;;
      마운틴 듀에 카페인이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후후. 애용할 거 같아요. 흐흐흐. 근데… 마운틴 듀에 박카스에 타이레놀이면 각성이 아니라 폭주하지 않을까요? 흐흐흐. 언제 하시거든 결과도 알려 주세요. ^^;;

  2. 루인, 커피 엄청 마시네요.
    참고로 저는 카페인을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잠이 안 오거나 하진 않아요. 잠은 정말 엄청난 걱정이 있을 때만 안 오는 듯;ㅁ;

    1. 와, 부러워요. 저도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자는 몸이었으면 좋겠어요… 커피는 편두통 진통 효과로만 사용하고요… 흐흐.
      엄청난 걱정이 있을 때만 잠을 못 잔다니 그건 정말 힘들 거 같아요.. 전 걱정하다 지쳐서 자는 타입이거든요…;;;;;;;;;;;;;;;;;;; 흐

  3. 강의 듣고 싶었는데, 다른 강의를 하느라 못 가서 아쉽네요..
    그나저나 저도 하다 보면 연결고리를 찾게 되는 게 많은데, 그게 참 좋아요. 스스로 공부도 더 되고.

    1. 저도 손톱깎이 님 강의를 못 들어 아쉬워요…
      강의를 하는 와중에 찾아 헤매던 연결고리를 찾노라면, 수강하신 분들께 돈을 내야 할텐데.. 라는 고민도 잠시잠깐 한답니다… 흐흐흐

  4. 컥 봉지커피 10개! 제가 그렇게 마신다면 사흘 동안 잠 못 잘지도 모르겠어요.

  5. 강의 무사히 끝마친것 축하드려요~ >_< 근데 루인님, 하루에 커피 8잔 이상 마시면 카페이니즘이라고 중독증세 나타납니당 ㅋㅋ (무게에 따라서 약간 다르겠지만)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심장박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용. 전 카페인이 전혀 안받기 때문에 녹차도 꼭 70도에서 우려요;; 카페인 덜 녹아나오라고...안그럼 마시고 못자는 불상사가 꼭 일어나죠 ㅎㅎ

  6. 저도 처음 강의 몇년동안 칠판에 글자 한 자도 못 썼어요. 그리고 초기에 지적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문장을 끝까지 다 맺어라 였어요. ~하고, ~~하고로 끝내는 게 아니라 ~다, ~다로 끝내고 또 그것에 부연설명을 다는 것이 사람들이 훨씬 더 명확하게 알아듣는다는 거죠. 제가 볼 때는 루인이 이야기들의 연관관계를 잘못엮거나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들진 않아요. 다만.. 계속 ~고, ~고 로 연결해서 머리 , 몸통, 꼬리의 파악이 좀 힘든 것일뿐. 내용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가 내용으로 자학하지 말구요. ^^ 루인이 가진 이야기를 좀 더 확!! 펼쳐놓을 어투!!만 좀 더 다듬으시면 훌륭할 듯 하옵니다. ^^ 감사해요. 강연 ^^ 헤헤.

    1. 전 사실, 칠판에 글자를 안 적으려고 했음에도 왠지 적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결국 적은 거래요… 으하하. -_-;;;
      그리고.. 조언 너무 고마워요!! 전 사실 ***님(비공개 댓글일 때면 이름을 밝히기가 꺼려지더라고요..;;)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가장 부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감이에요. 똑 부러지게 잘 말하는 모습이 멋져서 참 많이 배우고 싶어 하거든요. 헤헤.
      다음 강의 준비로 많이 긴장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기대하고 있답니다. 홧팅이에요.
      소중한 기횔 저에게 줘서 너무 고맙고요! 🙂

  7. 자판기 커피 하루 열잔 마시고도 끄덕없이 잠 잘 자던 이십대때가 저도 분명 있었는데 말이죠;;; -_-;;
    카페인 함량은 인스턴트커피에 더 많다고 하는 설도 있고, 원두커피에 더 많다는 설도 있어서 잘 가늠 못하겠어요. 컨디션의 차이가 아닐까요?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간과 내용 모두 감안해서 “강의”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어휴… 저 같은 소심이에겐 위대해요!

    1. 아.. 카페인 함량은 확실한 게 아니네요… 전 한동안 인스턴트에 더 많은 줄 알았는데, 몇 달 전 원두에 카페인이 더 많다는 얘길 듣고 또 그런가 보다 했거든요… 흐흐.
      강의는, 일종의 훈련인 거 같아요. 다른 의미론 운동인 동시에 생계수단;;이고요. 전 책을 번역해서 내시는 라니 님이 더 위대해 보이는 걸요!!

  8. 우와 커피량… 정말 장난 아니군요…… 아직까지는 건강이 안녕하신지요?! ㅋㅋ 사르트르는 하루에 커피를 30잔인가? 이상을 마셨다는데, 그래서 그의 눈이 그토록 안 좋았던 이유가 커피라는 말도 있더군요. 루인 님, 조심하시길..! ^^

    1. 헉… 하루에 커피 30잔이라니… 왠지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생기네요… 크크크 -_-;;
      가끔 속이 쓰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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