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논문

01
내가 지렁이를 탈퇴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든다는 소문이 났다. 지렁이와 성격이 안 맞아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렁이를 탈퇴하고 좀 다른 성격의 단체를 만든다는 소문. 그 소문을 전해 듣고, “아, 그렇구나.”했다.

논문을 끝내야 하기에 상반기의 활동을 접고 하반기엔 논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인간은 도대체 논문을 몇 년이나 쓰는 것이냐! 이젠 논문을 쓴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민망할 따름이다. -_-;) 그러며 지렁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운동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와 관련해선 여기로) 근데 이 얘기가, 지렁이를 탈퇴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다는 것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꽤나 많이 퍼진 거 같다. 재밌다. 흐흐. 새로운 단체를 상상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인데 기정사실로 소문이 나다니. 왠지 이런 소문을 배신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흐.

어쨌든, 그 형태가 무엇이건 간에, 홍보는 된 건가? -_-;; 크크크

02
쓰려는 주제도 그렇고 논문의 의도도 그렇고, 논문을 통해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 이기적이거나 제멋대로인 걸까….

활동을 하며(오래 한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계를 느끼고, 어떤 답답함을 풀고 싶은 욕심이 들고, 좀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하고 싶은 바람을 품는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테다. 아마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이런 거 말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며, 당장은 필요 없을 거 같지만 결국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욕심. 물론 이런 욕심이 때론 부담스럽다. 그건 현재의 여건 때문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표방하는 단체가 지렁이 하나이지만 않아도, LGBTQ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다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정도의 인원만 되어도 내 욕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을 테다. 밀려오는 무수한 안건들 속에서, 당장 이런 의제들과는 다소 무관한 것 같은, 궁극적으론 밀접하지만 당장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운동을 하고 싶을 때, 나는 나의 이런 욕심이 솔직히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고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_-;;

지난 상반기 동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는 활동에 좀 더 집중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한 편으론 논문과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런 이기적인 욕심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며 책상에 앉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활동과 논문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았다. 논문과는 전혀 무관한 일만 한 것 같았다. 활동과 “책상에서 하는 공부”의 조화를 모색했지만 결국 별개의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주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모색하면서, 목차를 대충이나마 그려가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 별개의 짓(딴 짓? -_-;; 흐흐)을 했던 게 아니었다. 활동을 하면서 꿈꿨던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방향과 논문의 주제가 서로 만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논문에서 내가 사용할 방법은 인터뷰와 그 해석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질적 연구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검토하고 좀 다른 이론을 모색하고자 한다. (내가 사회학보다는 인문학을 좀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건 아니다. 정말? -_-;;) 그리고 이왕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한다면, 제도나 법에 제약을 받지 않는 상상력을 펼치고 싶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선 “비현실적”이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제도와 법이 포착할 수 없는 경험들을 통해 다른 상상력을 모색한다는 점에선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가 엄청난 걸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알고 있음”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고민하지 않음”의 괴리가 상당해서, 그 간극을 메우려 할 뿐이다.

장점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방향에 필요한 이론적인 토대를 내가 한다는 것. 즉, 다른 누군가가 나의 지적 욕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다. 하지만 한계는 너무 자명하다. 혼자서 “쑈”한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ㅡ_ㅡ;;

03
아무려나 욕심은 거창한데 어떻게 되려나. 용두사미가 될는지 화룡점정이 될는지. 심히 걱정이다.

6 thoughts on “소문, 논문

  1. 다른 단체가 만약 생긴다면 이름이 궁금해요. ㅎㅎㅎ
    지렁이… 그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

    1. 지렁이는 현재 있고, 달팽이를 사용할 단체도 예정 중에 있으니, 송사리? 개구리? 흐흐.

    1. 고마워요. ㅠ_ㅠ
      근데 화룡점정이라니, 이제야 엄청 거만한 말이란 걸 깨달았어요. -_-;; 흐흐

    1. 사실 키드 님 댓글만 있을 땐, 답글로 “토룡으로 할까요? 흐흐”란 말을 쓸까 했어요. 흐흐흐
      지렁이와 같은 식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거 같지만, 토룡이면 여러 의미로 재밌을 거 같아요. 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